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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고들

일본항공 123편 추락사고

by 고속도로껌팔이 2020. 3. 6.

 

 1985년 8월 12일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오사카 이타미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던 

일본항공 123편이 일본 군마현의 다카마가하라산에 추락한 사고

 

123편 추락사고 전 이야기

1978년 6월 2일 JAL 115편명을 부여받고 394명을 태우고

도쿄에서 출발해 오사카 이타미 공항에 착륙하게 된다.

 

착륙하는도중 기장의 실수로 비행기의 꼬리가 바닥에 긁히는 '테일 스트라이크'가 발생하게 된다.

사망자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중상 2명과 23명이 경상을 입고 항공기의 '벌크헤드'가 손상되었다.

 

항공기의 벌크헤드

벌크헤드란 고공에서 객실의 기압을 일정하게 유지시켜주는 부품.

 

벌크헤드가 손상되자 일본항공은 보잉에게 수리를 의뢰하게 된다.

하지만 수리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하게되는데..

 

정상적인 수리라면 위쪽 사진처럼 보강판을 덧대고 리벳을 고정시켜야했지만

보강판이 분리되게 수리를 진행했다.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고...)

 

사고기는 보잉 747SR-46

일본 국내선 수요를 충당시키기 위해 항공기의 항속거리를 줄이는 대신 162석을 더 배치하여 528석으로 개조시켰다.

 

1985년 8월 12일 일본 명절 전날과 바쁜 비행 스케줄이었다.

 

기장 : 타카하마 마사미(49) , 부기장 : 사사키 유타카(39) , 기관사 : 후쿠다 히로시(46)

 

당시 기장은 교관으로 부기장석에 앉았고 부기장은 DC-8 기장으로 747 기장 승격 과정을 진행하는중이어서 기장석에서 앉아 조종을 했다.

 

오후 6시 12분, 승객 509명과 승무원 15명을 태우고 오사카로 가기 위해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이륙한다.

 

오후 6시 24분, 사가미만 24,000피트를 지나던 일본항공 123편에서 갑자기 원인 모를 폭발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폭발과 함께 벌크헤드(격벽)와 수직 꼬리날개가 떨어져 나갔다.

설상가상으로 유압액까지 새어 나가기 시작했다.

 

폭발음과 함께 수직 꼬리날개와 벌크헤드가 떨어져 나간 모습

유압액이 새어 나감으로 인해서 조종계통은 완전히 먹통이 된다.

하지만 조종사들은 폭발음의 원인을 알 수가 없었고

그저 무언가가 폭발했다는 것과 유압이 떨어졌다는 사실만 알 수 밖에 없었다.

 

오후 6시 31분, 도쿄 관제소는 나고야로 비상착륙을 제안하지만 기장은 거절하고 하네다로 회항을 요청한다.

기장이 하네다 공항으로 회항하겠다고 말한 후 관제소는 일본어 사용을 허가한다.

 

방향타와 승강타가 떨어져나갔기 때문에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더치롤과

상하로 흔들리는 휴고이드 운동에 빠지게 된다.

 

항공 기관사는 기어를 내리자고 기장에게 요청한다.

기어를 내려 바람 저항으로 기체를 안정하게 하려는 계획인 것이다.

기장은 내려가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기어는 기어 자체 무게로 내려갔다.

 

6시 54분, 기장과 기관사가 자신들의 현재위치를 알려달라고 하자, APC는 하네다에서 45마일 북서쪽이며 쿠마가야에서 25마일 북서쪽이라고 대답한다. 또한, 하네다뿐만 아니라 미.일 요코타 공군기지에서도 착륙할 수 있다고 123편에게 전달한다.

 

123편은 점점 땅으로 하강하기 시작했고 기장은 부기장에게 질타하듯 말한다.

 

"파워!! 플랩!! 기수올려!! "

 

기체에서는 GPWS(지상접근경보장치)가 울렸다.

 

기장은 추락하기 직전 "이제 끝이다" 라고 말했다.

약 30분동안의 사투끝에 자신이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얼마나 무서웠을까.

오히려 유압계통이 모두 상실된 대형 점보기를 30분간 날게 한 것이 기적이었다.

 

결국 123편은 군마현 다카마가하라 산 능선에 추락했다.

 

파란색이 원래 항로, 빨간색이 사고당시 123편의 항로....

추락하기 직전 123편은 추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추력을 최대로 올린 상태였었고 그 상태로 지면에 부딪혔기 때문에

추락 시 속도는 약 350Kt였다. 추락 충격으로 인해 항공기 후부가 떨어져나갔다.

항공기 본체에는 생존자가 없었고 떨어져나간 후부에서만 4명이 생존했다.

기장의 시신은 완전히 불타버렸고 확인가능한 치열 5개로 겨우 신원을 확인했다.

 

추락했을 당시 사고지점은 비가 오고 있었기 때문에 기체가 폭발을 일으키지 않아서 추락현장에 생존자가 적지않게 생존해 있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폭우와 구조하기 불리한 산악지형, 시계가 확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조활동을 펼치지 않았고 결국 추락 14시간이 지난 후에야 구조대가 도착한다.

생존자 상당수가 비가 내리는 추운 밤을 견디지 못하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이 사고로  탑승자 524명 중 520명이 사망하고 

단 4명만이 생존했다.

 

또한, 일본 국내선의 수요는 25%나 떨어졌으며 일본항공 회장은 자진 사퇴.

피해 유가족들에게 한화 약 78억을 배상했다.